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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의 장소성

그동안도 느꼈지만 지난 주 주말에 절감했다. 그 곳의 그 '이상한' 장소성에 대하여-. 홍대 한 복판에 있으면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않고, 홍대스럽지 않다. 드나드는 사람이나, 하는 일들 모두가 그렇다. 그 곳에서 일했던 삼개월 동안 나는 그 곳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았으며 내 스스로가 홍대에 살고있다는 실감도 나지 않았다. 마치 마법사들이 머글(?)들과 모여 수다를 떠는 휴게소 같은 느낌이 그런 느낌일까. 굳이 비유하자면 그렇다. 일할 때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시간이 꼭 멈춘 것 같아서 밤인지, 낮인지 오늘인지 내일인지도 모르고,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게 좀 무서워서 그만 뒀지만, 감춰둔 벽장문을 하나쯤은 갖고 싶어서 나는 여름이후에도 종종 들렀었다. 
기묘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거기서는 이상할 게 없는 것 같다. 그게 이상하다. 감정이나 행동 그 모든게 너무 오픈되고 용인되고 제재란 없으며 잘못도 용서될 것.만 같다. 내가 그 안에 있을때도 그 사실을 느꼈었다. 나의 문제는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 그런데 즐기지는 못한다는 것. 그걸 즐겨버리기까지 하면 정말 막장일 것 같고, 어떻게 그럴수 있나 싶고. 그러면 반대로 내가 이상해진다. 그 안에선 그 누구도 아무것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그게 사실일 것 같지도 않다).

by hein | 2010/01/15 00:50 | : 기억의 유통기한 | 트랙백 | 덧글(0)

See you someday!

나의 배웅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1.자거나(가는 그 순간까지)
2.현관에서 배낭을 맬 때까지 다정하게 인사하거나.

2번일 경우 늘 하는 인사는 See you someday. 지구는 둥그니까 언젠간 만날지도 모르잖아. 간혹 내 망할 발음으로 See you Sunday로 오해를 사서 서로가 웃지 못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연락이 닿는 친구-는 없다. 고작해야 석 달 일했고 한국에 오는 여행자들이야 스탑오버로 사나흘 있다 가는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억지로 메일주소를 받거나, 페이스북에 애드하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냥 지구는 둥그니까, 언젠가 만나면 그게 좋은거니까.

그래도 난 이름은 다 기억하려고 애썼다. 항상 이름을 불렀고, 그것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내가 발음할 수 없는 요상한 언어들도 최대한-. 그때도 느꼈지만(어렴풋이) 지금은 확신할 수 있다. 내가 여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지난 여름, 나는 내 두 번의 긴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보다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났고 잊지못할 경험들을 했다. 게스트라는 입장에서 호스트라는 입장으로의 내 신분(?)의 변화가 있었던 것 빼고는 기분과 감정 그 모든 것이 동일했다.

언어의 장벽이 깊은 만큼 오가는 감정은 솔직했고 골도 깊었으며 때론 애틋했다.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심어주자-따위의 건설적 마인드는 버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이' 진심으로 대했다. 오해를 사고 화가 나면 그것을 사과하거나 변명할 기회따위는 두번 다시 없다. 지구를 다 돌아 만나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항상 '진심으로' 대해야한다. 화가 나고 짜증나면 말을 해야한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화를 낼 수 없고, 그 기회또한 언제올 지 모르니까.(물론 언어의 장벽은 떄론 화도 누른다.)

복잡다단한 감정의 시간들을 지나, 다소 객관적인 시간이 되어서야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몇 번이나 실시간 포스팅을 하려고 애를 쓰다가도 실패를 거듭했다. 그 미묘한 기분과 경험들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것들이 대부분 넌버벌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간만에 페이스북에 들어가 프로필 사진을 바꾸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는지 아님, '이제 직딩'이라는 여유때문인지 갑자기 여러가지가 떠올랐다. 오늘 쯤에 만난 누구라면 자연스럽게 이런 기분을 영어로 지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언젠간 만나, 지구는 둥그니까.
그리고 잊지말고.



by hein | 2009/11/23 01:55 | : 기억의 유통기한 | 트랙백 | 덧글(0)

photo by Daniel


얼마전(이라고 하지만 거의 한 달 전)에 왔다간 대니얼이 찍어주었다. 나는 페이스북에 어쩌다 가입만 한 상태였는데 나에게 프로필로 쓰라며 저 사진을 보내주었다. 아, 이럴 때 슬랭이 필요한건데! 썩소와 함께 고맙단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결국 썩소를 뺀 고마움만을 전하고 지금까지 페이스북에 걸어놨다가 오늘에서야 간신히 내렸다. 그 삼개월 있으면서 죄다 저런 사진들만 찍혀서 어글리코리안에 어글리스태프라는 오명만 잔뜩 쓰는 것 같다.
항상 중요할 때 사진을 못남긴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해보면 지난 여름은 나에게 정말 여러모로 '잊지못할' 순간들이었고, 만난이들또한 그런데 남아있는게 정말 없구나.

여튼 대니얼은 다시 한국에 온다고했으니 그 때쯤엔 이 수모를 갚아주겠다. 그러나 그 녀석은 키도 크고 잘 생겨서, 망가질 일이 나보다 훨씬 적다. 고작 맥주 한 잔이었는데 에나의 친구라는 얘기때문인지, 중국에 있다는 것인지 아님, 디자이너라는 것 때문인지(가지가지의 이유들로) 꽤 오랜동안 기억이 남는 것 같다. 물론 나는 퍼펙트하고 훈늉한 스태프였기 때문에 게스트를 잊지 않는다.
ㅋㅋ.

by hein | 2009/11/23 01:24 | : 기억의 유통기한 | 트랙백 | 덧글(0)

오늘의 말

배움이란 모두 좋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날이 늘어가는 나의 슬랭 이해도와 사용 빈도수를 생각하면.(-_-) 가급적 조심하려고 하지만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피하기가 힘들다. 그러던 와중에 어제 오늘 매우 참신한 슬랭을 배우게 되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참 많이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알렉스와 핀란드의 요아킴이 자신들이 아는 유일한 한국어가 있다며 얘기한 것은 다음과 같다.
 -이~ㅆ ㅂ ㄹ ㅁ~ -

어디서 배웠냐고 물었더니, 김기덕,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너무 좋아한다며 영화속에서 자주 나왔단다. 더불어 중국에서 일하는 미국인 에나 또한 자신도 안다며. 핀란드와 프랑스,미국의 거리를 생각했을 때 셋이나 안다는것은, 상당수의 외국인들이 안다는 의미겠다. 웃지 못할 이 해프닝에 잠시 당황하면서 나름 주의를 주었다. 베스트 프렌드 끼리만 쓸 수 있으며 매우매우 나쁜 말이라고. 그러나 욕이란게 늘 그렇듯, 쓰면 쓸 수록 입에 착착 감기고 늘어만 간다. (난 건강한 욕지거리는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주의다.) 그래도 반쯤은 씁쓸한 맘에 프랑스에는 같은 뜻을 지닌 욕이 뭐가 있냐고 물었다.(나도 같이 배워서 한국 욕에 프랑스 욕으로 대꾸해 주고 싶었다.) 정색하며 그런 말은 없단다. 배우면 큰일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없다고 딱 잡아떼는 것이었다.(웃기시네) 

'F'로 시작하는 영어의 그것과 한국의 'ㅆㅂ'에서 이야기는 어느덧 네덜란드까지 갔다. 우리의 네덜란드인 더치가 으쓱대며 말하길,

-우리 나라에선 'Get Cancer!' 라는 욕을 써-

한바탕 좌중이 뒤집어졌다. 네덜란드어로는 '암이나 걸려버려' 가 욕이라며. 후에 그 네이티브한 발음을 들었는데 도저히 따라할 수가 없었다. 뭐랄까 신선한 충격이었다. 슬랭이나 욕의 경중이라는 것이 다 그렇고,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들이 다반사인데 '암이나 걸려버려'라니. 뭔가 새로웠다. 마치 욕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는 순진한 애가 참다 못해 나름의 저주의 말을 퍼붓는 느낌같이. '귀엽다'라고 생각한 것은 나 뿐일까.

물론 후에 그것의 용도와 주의사항에 대해 들었는데 스스로에게도 쓸 수 있단다. 마치 우리 나라에서 '젠장, 망할'을 스스로가 하듯이. 스스로에게 '암에 걸릴!'이라고 욕하는 모습 또한 폭소거리 아닌가. (ㅠㅜ)
무엇보다 그간 듣고 배워왔던 것들이 상당 부분 인종적인,성적인 요소들을 가진 것들이 뿐이어서 뭔가 이건 그런 미묘함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물론 (영어를 하는)네덜란드인에게만 쓸 수 있다는 제한이 있다.(앞으로 쓸 일이 없을거란 소리다ㅠㅠ)

나는 내 참담한 수준의 영어를 알고 있고, 외국인이 한국어 욕을 할 때의 느껴지는 위화감에 대한 경험도 있기에 슬랭은 쓰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론 좀 필요할 때가 있긴하다. 앞으로 매우 유창해질지도 모르는(?)나의 영어와 가망없는 네덜란드어를 위해 훗날의 즐거움으로 기약해 놔야겠다.

by hein | 2009/10/19 03:27 | : 기억의 유통기한 | 트랙백 | 덧글(2)

일상의 무게


어제 부로 '이고지고' 인생을 잠시 멈췄다. 그 기념으로 한 장 남겼다.
집에 돌아와서-.
요근래 나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은 '어디 살아?'와 '무슨 일 하세요?' 의 아주 일상적 질문들.
대답을 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대부분 갸우뚱 백이면 백 이해를 못하거나 꼬리를 무는 또다른 질문으로 날 곤혹스럽게 하곤 했다. 잠시나마 두 개의 집을 번갈아 다니던 지난 몇 달을 기념할 만한 증거품이 내 가방 정도일 거란 생각이 스쳐 사진을 찍었다. 또 꺼내놓고 보니 생각보다 얼마 없는듯- 싶기도 하고, 좀 불렸어야 하나-하는 생각도 들었다.(누구 보라고-_-)

저런 짐을 매면서 든 생각은 역시 일상의 무게가 여행의 무게보다 확실히 무겁다-라는 사실.
여행 때 난 그 누구보다 가볍게 다녔는데, 일상에선 정말 왠만한 누구보다 무겁게 다닌다. 이게 내가 선택한 그 일상의 무게인가보다.

by hein | 2009/10/14 00:40 | : 기억의 유통기한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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